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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마테라피 Aromatherapy

육두구가 뉴암스테르탐을 뉴욕으로 만들었다?

       육두구(Nutmeg)가 뉴암스테르담을 뉴욕으로 바뀌게 했다.

 

육두구가 왜 그리 중요했을까?

 정향, 후추, 계피 같은 향신료(Spices)들은 식품의 보관, 향신료 의약품으로 널리 사용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피비린내 나는 열강들의 침략의 역사와 일치한다. 또한 살육으로 얼룩진 비극의 산물이기도 하다.

육두구는 나무열매의 일종으로 14세기와 16세기까지 주기적으로 유럽을 공포로 몰고 간 흑사병을 예방한다고 여겨졌던 것이다. 원래부터 비싸던 것이 엘리자베스 여왕시절 런던의 한 외과의사가 기침으로 시작해서 결국에는 죽고 마는 전염성 흑사병에 육두구 향냥 만이 유일한 치료법이라고 주장한 다음부터 육두구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지금은 고작해야 고창(배가 몹시 붓는 병을 이르는 말)이나 흔한 감기 치료에 쓰이는 것이 전부이지만,

그 당시 말린 육두구 열매는 금만큼 귀한 존재였다.

 

 

                       그림) 육두구나무의 열매: 엘리자베스 여왕시절, 육두구 나무는 반다제도에서만 자라고 있었다.

 

 

 이러한 육두구가 어떻게 뉴암스테르담(New Amsterdam)을 뉴욕(Newyork)으로 바뀌게 하였을까?

얘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1677년 브레다 조약에서 네덜란드는 북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소유했던 맨해튼섬을 영국에 양도하고

인도네시아 런섬을 얻었다.

 

 

                            그림)  17세기의 맨해튼: 뉴암스테르담으로 인구 1000명 정도 살았다고 한다.

 

 

 런섬은 인도네시아 자바섬 동쪽에 있는 향료제도(몰루카제도)에 속한 반다제도의 조그만한 산호섬으로

육두구가 자생하는 지구상의 유일한 곳이었다.

 

 

 

           그림) 런섬: 17세기의 육두구의 본고장 런섬, 인도네시아 반다 지역  

 

 

 네덜란드 청탁으로 고용된 헨리허드슨이 동인도와 향료제도로 통하는 북서통로를 찾다가 맨해튼을

발견하자 네덜란드는 맨해튼을 자국의 영토로 선포했다.

그런데 1664년 뉴암스테르담을 내줄 수밖에 없게된다.

여기에 불복한 네덜란드인들이 맨해튼과 기타지역에 대한 영토권을 주장하여

영국에 저항하면서 거의 3년에 걸친 영국과 네덜란드의 전쟁이 벌어졌다.

한편 영국이 런섬을 차지했던 사건 이래 네덜란드는 심기가 불편했는데 런섬의 확보는

육두구 무역을 독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무자비한 식민정책을

인도네시아애서 펼쳤던 네덜란드는 영국이 향료 무역에 손끝이라도

대는 걸 허락하지 않은 심산이었는데 결국 4년간의 포위공격과

유혈이 낭자한 전투 끝에 런섬을 네덜란드는 점령했다.

영국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상선을 공격했다.

네덜란드도 동인도 회사의 피해보상과 뉴암스테르담의 반환을 요구했고

영국은 런섬의 피해보상과 런섬 반환을 요구했다.

어느 쪽도 주장을 철회 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전쟁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브레다 조약은 양국의 체면을 세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영국은 육두구의 섬을 포기하고 맨해튼을 가지기로 했다.

그리하여 맨해튼은 영국령인 새로운 욕 New york이 되었다.